스케치북을 들고 떠나는 여행 — 그림으로 기억하는 순간들
여행 가방을 쌀 때마다 저는 늘 가장 먼저 스케치북을 챙깁니다. 여권도, 이어폰도, 카메라도 그 다음이에요. 작은 A5 사이즈의 닳아진 스케치북 한 권.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인 티켓 조각과 커피 얼룩, 연필 가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그 공책은, 제게는 또 하나의 여권이자 작은 공연장이고, 조용한 미술관입니다. 그 안에는 제가 지나온 도시들의 공기, 스쳐 간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그 순간의 음악이 조용히 눌러 앉아 있습니다.
왜 하필, 스케치북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저는 사진을 잘 찍지 못했습니다. 구도도 서툴렀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면 이상하게도 장면이 이미 지나가 버리곤 했죠. 그 대신 빈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어디서든 놀 수 있었습니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클림트, 파울 클레의 그림책을 끌어안고 자던 중학생 시절, 저는 언젠가 그들처럼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겠다고 막연히 꿈꾸곤 했습니다.
첫 유럽 여행을 떠나던 날, 선물로 받은 새 카메라 대신 가방에 넣은 것은 작은 스케치북 한 권이었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공항버스 안에서, 저는 흐릿한 창밖 풍경을 연필로 어설프게 따라 그려 넣었습니다. 불안과 설렘, 낯선 나라로 떠난다는 두근거림이 뒤섞인 그 시간의 온도를, 사진보다 연필선이 더 솔직하게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여행’이라는 단어와 ‘스케치북’이라는 물건이 제 머릿속에서 하나의 짝이 된 건.
사진보다 그림이 더 오래 남는 이유
사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찍히지만, 그림은 눈을 오래 뜨고 있어야만 완성됩니다. 한 장면을 스케치하기 위해 저는 보통 10분에서 30분 정도는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거리의 카페라면 사람들의 발소리와 커피 내리는 소리, 스쳐 지나가는 대화의 조각들, 그날의 바람과 조명의 색감까지, 제 몸에 먼저 스며들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렇게 귀와 눈, 피부와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들이, 어느새 연필 끝으로 흘러나옵니다. 에곤 실레가 손의 떨림까지 솔직하게 그려냈듯, 제 손도 그 순간의 미세한 떨림을 숨기지 못합니다. 파울 클레가 말한 것처럼 “선을 산책시키듯” 저는 선을 걷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사진으로는 절대 담기지 않는 것들이 종이 위에 묻어납니다. 그날의 공기 밀도, 마음의 속도, 제 안에서 울리던 멜로디 같은 것들 말이죠.
사진 앨범을 훑어볼 때보다, 오래전에 그려둔 스케치를 다시 펼쳐보는 순간에 더 강렬한 ‘데자뷔’가 찾아오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저는 단지 ‘본 것’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의 저 자신을 함께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눈에 보이던 건 풍경이었지만, 손으로 옮기는 건 사실 제 마음이더라고요.
스케치북 속에 눌어붙은 여행의 조각들
파리의 어느 아침, 센강 근처 작은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날이 있습니다. 카푸치노 잔 옆에 펼쳐둔 스케치북 위에, 모딜리아니의 인물들처럼 길고 조용한 눈을 가진 바리스타가 천천히 그려졌습니다. 그는 주문을 받으러 제 테이블로 올 때마다,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케치북을 힐끔 보곤 했죠. 말은 한마디도 섞지 않았지만, 그 조용한 시선과 미소까지 모두 그날의 선 안에 남아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그림을 펼쳐 보면, 카페 안의 조용한 재즈와 커피 향까지 되살아납니다.
비엔나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빛 그림들을 본 뒤, 박물관 앞 벤치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황금빛 장식과 섬세한 패턴들이 눈을 어지럽힐 정도로 화려했는데, 제 스케치북에는 오히려 아주 단순한 선 몇 개만이 남았습니다. 박물관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연인의 뒷모습이었죠. 그들의 어깨 사이, 해질 무렵의 빛이 부서지며 만들어낸 작은 황금의 조각들이 제 눈에는 클림트의 캔버스보다 더 눈부신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을, 단 세 가지 색으로만 조용히 남겨 두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어느 골목에서는 피카소를 흉내 내 보겠다고, 왜곡된 건물과 과장된 구름, 삐뚤어진 창문들을 마음껏 그려봤습니다. 그날 밤 연주했던 작은 바에서의 공연 전, 긴장을 잊으려고 낙서처럼 시작한 그림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제 안의 두려움과 들뜸이 뒤섞인 감정이 그대로 스케치 속에 굳어 있더군요. 그 골목의 색과 냄새, 버스킹 하던 기타 소리, 그리고 제 심장의 박동까지도요.
어느 겨울 일본의 작은 해변 마을에서는, 눈발이 흩날리는 바닷가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날은 유독 마음이 무거웠고, 하얀 파도 위로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생각들이 부서져 흩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에곤 실레의 날카로운 선을 떠올리며, 차갑게 꺾인 해안선과 앙상한 나무들을 거칠게 그려 넣었죠. 시간이 흘러 그 스케치를 다시 볼 때면, 그 겨울 바다의 차가운 숨소리와 함께, 그때의 외로움도 이상하게 더이상 두렵지 않은 무늬가 되어 있습니다.
내게서 음악과 그림은 서로의 번역본이다
저는 직업으로는 음악을 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늘 화가가 살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스케치를 할 때면, 제 머릿속에는 항상 어떤 선율이 함께 흐릅니다. 공항의 웅웅거리는 소음은 저에게 드론 사운드가 되고, 사람들의 발자국은 리듬이 되죠. 저는 그 소리들을 눈으로 바꿔 그립니다. 폴 클레가 음악을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친구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색채는 나의 건반, 눈은 나의 해머, 영혼은 나의 현”이라고 그가 말했다지요. 그 문장을 읽고 나서부터, 저의 여행 스케치들도 하나의 ‘악보’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거꾸로, 제가 그린 스케치를 보고 곡을 쓰기도 합니다. 파리의 카페에서 그린 바리스타의 눈빛은 재즈 발라드의 멜로디가 되었고, 비엔나 박물관 계단의 연인은 잔잔한 피아노 곡으로 태어났습니다. 바르셀로나 골목의 삐뚤어진 건물들은 불규칙한 리듬 패턴으로, 겨울 바다의 거친 선들은 낮게 깔리는 스트링 사운드로 바뀌어 갔습니다. 눈으로 본 세계를 귀로 다시 들려주고, 귀로 들은 장면을 손으로 또다시 그려내는 순환 속에서, 제 예술은 조금씩 숨을 쉬며 자라납니다.
클림트의 화려한 황금빛을 떠올리면, 제 귀에는 언제나 부드러운 왈츠가 함께 들립니다. 실레의 일그러진 인체를 떠올릴 때면,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현대음악의 긴장감이 스며들죠. 피카소의 분해된 얼굴들 사이에서는 리듬이 쪼개지고, 모딜리아니의 긴 목과 가늘게 감긴 눈에서는 저녁 노을 같은 잔잔한 코드가 흘러나옵니다. 이렇게 저에게 그림과 음악은 늘 서로의 번역본이 되어, 같은 감정을 다른 언어로 반복해서 말해 줍니다.
오래된 스케치북을 다시 펼쳐 보는 기쁨
가끔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 때가 있습니다. 공연과 작업, 일상적인 약속들이 빼곡하게 달력을 채우면, 새로운 도시의 공기를 마시는 대신 연습실의 먼지 냄새와 동거하게 되죠. 그런 날이면 저는 책장 한켠에 꽂혀 있는 오래된 스케치북들을 꺼내어, 마치 오래된 앨범을 넘기듯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 봅니다.
스케치북을 펼치는 일은, 오래된 편지를 다시 읽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선명해진 감정들이, 연필 자국 사이사이에서 조용히 웃고 있습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한때 너무 사랑해서 아팠던 도시의 풍경이, 이제는 그리운 친구처럼 느껴지고,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외롭고 막막했던 밤이, 지금의 저를 단단하게 만든 증거처럼 다가옵니다.
오래된 종이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카페의 커피 얼룩, 비 오는 날 번져버린 잉크, 공연장 조명 아래에서 급하게 그리느라 손자국이 남은 페이지들. 그 모든 흔적이 함께 섞여, 하나의 시간의 향기가 됩니다. 손가락 끝으로 거친 종이결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의 제가 이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 날의 나, 여기서 아직 숨 쉬고 있어.” 스케치북은 그렇게 말 없는 목소리로 저를 안assure 해 줍니다.
무엇보다도, 오래된 스케치들을 다시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변화’입니다.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의 서툰 선과 어색한 구도,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단단해진 손길. 예전에는 풍경만 가득 채워지던 종이 위에,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의 표정과 손짓, 그들의 사이에 흐르는 침묵까지 담기기 시작했다는 걸 발견할 때면, 저는 제가 조금은 더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오늘도 스케치북을 챙긴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꼭 먼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일만을 말하는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동네 카페에 앉아 창밖을 그려도,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신발만 몰래 스케치해도, 그것 역시 제게는 충분한 여행이 됩니다. 중요한 건 거리가 아니라, 순간을 바라보는 마음의 거리니까요.
그래서 저는 내일도, 모레도, 아마 나이가 많이 들어서 손이 떨리게 되는 날까지도, 여행을 떠날 때마다 스케치북을 가방에 넣을 것 같습니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클림트, 파울 클레가 남긴 그림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그랬듯 저도 제 시대와 제 삶을 조용히 기록해 보고 싶습니다. 거창한 작품이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미술관에 걸리지 않더라도, 한 장 한 장이 제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증명’이니까요. 내가 이 세상을 이렇게 보고, 이렇게 사랑했고,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언젠가 누군가가 제 오래된 스케치북을 우연히 펼쳐 보게 된다면, 저는 그 사람이 거기에서 화려한 풍경보다도 작은 숨소리들을 먼저 발견해 주었으면 합니다. 센강을 건너던 바람의 속도, 비엔나 박물관 계단의 웃음소리, 바르셀로나 골목의 울퉁불퉁한 노랫말, 겨울 바다의 낮은 숨. 그리고 그 모든 장면 사이마다 흐르던,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까지.
스케치북을 들고 떠나는 여행은 그래서 끝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한 페이지가 끝나면 또 다른 페이지가 기다리고 있고, 한 도시의 마지막 밤이 지나면 다음 도시의 아침이 열리듯, 저는 오늘도 새로운 빈 페이지를 앞에 두고 조용히 연필을 쥐어 봅니다. 다음에는 어떤 선과 색, 어떤 멜로디가 이 작은 책 속에 태어나게 될까요. 그 답을 알기 위해서라도, 저는 계속해서 떠나야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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