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혼자였기에 더 깊었다 — 에펠탑 아래의 그리움

파리, 혼자였기에 더 깊었다 — 에펠탑 아래의 그리움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혼자였기에 오히려 더 깊은 그리움으로 남았다. 이 한 문장을 남기고 싶어서, 사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센 강 위로 부서지던 빛과, 에펠탑 아래에서 내게만 속삭이던 바람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그 날의 공기는 유난히도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혼자 떠나겠다는, 조금은 무모한 결정

파리로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건, 새로운 앨범 작업이 자꾸만 같은 자리에서 맴돌던 시기였다. 코드 진행도, 가사도, 멜로디조차 서로를 닮아가며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마치 내 삶의 색깔이 흑백으로 바래가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연습실 창밖으로 기울어져 가는 노을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여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공기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숨 쉬어야겠다.’

처음엔 함께 갈 사람을 떠올렸다. 동료 음악가, 친한 친구,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하지만 누구의 얼굴을 떠올려도, 이상하게 풍경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이번엔 혼자 가야겠다.” 내 안에서 아주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곡의 숨겨진 트랙처럼, 늘 어딘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 목소리를 믿기로 했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던 손은 조금 떨렸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고요했다. 환불 규정, 일정표, 숙소 정보 같은 것들을 꼼꼼히 살피는 대신, 나는 한 문장만 노트에 적어두었다. “파리에서 나를 다시 만날 것.” 여행의 목적지는 도시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 될 거라는 직감 같은 것이 있었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 공기의 소리를 들었다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오래된 금속과 사람, 에스프레소와 향수, 낯선 이국의 공기가 섞인 묘한 향. 그 향은 마치 첫 연습실에서 맡았던, 먼지 쌓인 앰프와 낡은 기타 줄의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낯섦. 그 모든 감정이 공기 속에 뒤섞여 있었다.

택시 창밖으로 파리 외곽의 풍경이 스쳐 지나갈 때,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에서의 나와, 이곳 파리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 같았다. 좁은 골목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확 열리는 광장, 회색 건물들 사이를 조용히 스며드는 햇빛, 빨간 목도리를 두른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걷는 장면까지. 모든 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악보 속에만 존재하던 이미지 같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숨을 고르듯 잠시 침대에 앉았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누군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프랑스어, 자전거가 도로를 스치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낯선 박자로, 그러나 묘하게도 음악처럼 들렸다. 나는 무심코 휴대폰 녹음 버튼을 눌렀다. ‘파리 공기의 소리’라는 제목을 붙이고, 첫 번째 트랙을 저장했다.

에펠탑 아래에서, 그리움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에펠탑을 처음 마주한 건, 파리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는 저녁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하늘은 아직 푸른빛을 조금 간직하고 있었고, 그 위로 철골 구조물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에서 수없이 보았던 그 탑은,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거칠고 묵직했다. 차갑게 빛나는 철의 선들이 하늘을 향해 얽히고설켜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어느 날의 내 악보 같기도 했다.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 솔직한.

탑 아래 잔디밭에 앉아 올려다보니,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한국에서라면 분명 누군가와 셀카를 찍고, 사진 속 미소를 확인했을 텐데, 그날 나는 그저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철골 사이로 스며드는 하늘빛, 옆에서 와인을 나눠 마시며 웃고 떠드는 연인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코디언 소리. 그 모든 것 사이에, 나는 조용히 홀로 앉아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장면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아주 인간적인 바람. 그러나 그 바람 뒤에 곧 이어진 감정은 다름 아닌 감사였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의 표정을 읽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나는 온전히 이 순간을 내 속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눈앞의 거대한 탑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건, 내 안에서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그리움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노래들에 대한 그리움.

빛이 켜진 에펠탑이 황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언젠가 이 장면을, 내 음악으로 다시 불러낼 수 있겠지.” 철골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대답처럼 들렸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미 멜로디 하나가 내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낮게 깔리는 베이스 위로, 에펠탑 조명이 반짝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색을 띠는 코드 진행. 나는 혁대에 걸려 있던 작은 노트에 서툰 악보를 그려 넣었다.

도시의 냄새와 소리들, 그리고 그 사이의 고독

파리는 내게, 시각적인 아름다움보다 먼저 소리와 냄새로 다가왔다. 카페 앞 테라스에서 나는 에스프레소와 갓 구운 크루아상의 버터 향, 비가 온 뒤 석조 건물에서 피어오르는 축축한 돌 냄새, 지하철 통로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향수와 오래된 먼지의 냄새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믹스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치 이 도시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온몸의 감각을 열어두고 걸었다.

몽마르트 언덕에 오르던 날, 숨이 가빠지도록 계단을 오르면서도 나는 발걸음 소리를 세고 있었다. 돌계단을 밟을 때마다 ‘툭, 탁, 툭, 탁’ 리듬이 생겼고, 옆을 지나치던 버스커의 기타가 그 위에 화음을 얹었다. 봉주르, 메르시, 빠르동 같은 짧은 말들이 불규칙하게 튀어나오며 마치 애드립처럼 들렸다. 그 안에서, 나는 음악가로서의 내 귀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모든 순간이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깊은 밤 숙소로 돌아올 때면, 복도에 울리는 내 발소리가 유난히 쓸쓸하게 들렸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단체 채팅방에 올린 사진들, 공연 소식, 익숙한 농담들을 스크롤하며 잠깐씩 마음이 허전해졌다. 그때마다 나는 일부러 휴대폰을 끄고, 방 안 불을 최소한으로 낮추고, 창밖의 소리에 집중했다. 멀리서 울리는 경찰차 사이렌,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연습 소리, 한밤중에도 술잔 부딪히는 소리. 그 모든 것들은,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또 다른 방식의 합창 같았다.

외로움이 창작으로 번져가는 순간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 끝까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일정, 어떤 의견도 묻지 않는 선택들. 그 과정에서 외로움은 자주 찾아왔지만, 이상하게도 그 외로움은 곧장 음악으로 번져갔다. 마치 빈 캔버스를 마주한 화가가,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을 붓질로 바꾸어내는 것처럼.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고 돌아나오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치켜든 사람들, 작품보다 화면을 먼저 확인하는 자세,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플래시.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정작 나는 그림보다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있지만, 각자의 이유와 감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공연장 앞에 줄을 선 관객들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작은 호텔 책상에 앉아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그림을 보지만 / 아무도 같은 마음은 아니야 / 플래시 속에 갇힌 미소들 /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진짜 표정들…” 파리에서 느낀 외로움은, 타인 속에서 더 깊어지는 고독이었다. 하지만 그 고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오래 찾던 언어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파리가 내 음악에 남겨준 것들

파리는 내 음악의 사운드를 바꾸었다기보다, ‘여백’을 바꾸어 놓았다. 예전의 나는 악기를 가능한 한 많이 쌓는 편이었다. 비어 있는 공간이 두려웠고, 침묵이 어색했다. 그런데 파리의 거리에서, 카페의 창가에서, 센 강변의 벤치에서, 나는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들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와인 잔을 사이에 두고도 말 대신 눈빛으로 대화하는 연인들, 강가에 혼자 앉아 담배만 피우던 청년,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빼고 그냥 창밖만 바라보던 노인. 그 ‘침묵의 장면들’ 속에 훨씬 더 진한 서사가 숨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작업실에 앉았을 때, 나는 파리에서 녹음해온 공기의 소리들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에펠탑 아래의 바람, 센 강 위 다리를 건너던 발자국들, 길거리 악사의 불완전한 음정들. 그 모든 것들을 작은 샘플로 잘라 곡의 인트로와 아웃트로에 배치했다. 그리고 예전 같았으면 빽빽이 채웠을 공간에, 과감하게 침묵을 남겨두었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공백이,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는 걸 파리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에펠탑 아래에서 떠오른 그 멜로디는 결국 앨범의 타이틀곡이 되었다. 후렴의 가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빛은 늘 멀리서 더 선명하게 보여 / 혼자였기에 더 또렷해진 도시 / 네온 대신 별을 세던 그 밤 / 에펠 아래의 그리움이 내 노래가 됐어.” 이 곡을 라이브로 부를 때마다, 나는 잠시 마이크를 조금 멀리 두고, 객석의 숨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만큼은, 파리의 밤공기와 한국의 공연장이 조용히 포개지는 기분이 든다.

혼자 파리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언젠가 혼자 파리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조용히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충분히 두려워해도 괜찮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가지 않지는 말자.” 혼자 떠나는 여행은, 사실 목적지보다도 자기 자신이 더 낯설어지는 경험이다. 잘 아는 줄 알았던 내 취향, 내 한계, 내 감정의 깊이를,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에펠탑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유명한 관광지를 모두 체크해야 할 의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비 내리던 오후, 골목 어귀 작은 빵집에서 종이 봉투에 갓 구운 바게트를 받아 들던 순간의 따뜻함. 인적 드문 버스 정류장에서, 겨울 저녁 특유의 파란빛 공기를 마시며 손을 비비던 나 자신. 호텔 방 침대에 홀로 누워, 천장에 비치는 가로등 빛을 보며 의미 없이 흥얼거리던 미완의 멜로디.

혹시라도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날에는, 그 마음을 억지로 밀어내지 말고 천천히 바라봐 달라고 말해주고 싶다. 외로움은 도망쳐야 할 감정이 아니라, 지나가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손님 같은 것이다. 그 손님이 머물다 간 자리에, 당신만의 언어와 음악과 그림이 남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 떠났기에, 더 깊어질 수 있었던 나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창밖 구름을 내려다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혼자 떠난다는 건, 결국 나를 믿어주는 연습이구나.”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그에게 기대어 넘겼을 불편함들, 쉽게 건너뛰었을 감정들, 외면했을 질문들을 나는 온전히 끝까지 겪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강했고, 동시에 훨씬 더 연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리의 거리를 홀로 걸으며, 나는 오래 미뤄두었던 나 자신과의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타인의 기대이고 어디부터가 나의 욕심인지, 실패해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말해줄 사람은 누구인지.” 그 수많은 질문의 끝에서, 결국 남은 건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였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오래 지키고 싶다는 것.

에펠탑 아래에서 느꼈던 그리움은, 알고 보면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조정된 버전의 내가 아니라, 조금은 어설프고 서툴지만, 솔직하게 떨리는 목소리 그대로의 나. 혼자 떠난 파리는 그 모습을 다시 데려와 내 앞에 앉혀 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너는 이대로도 충분히 노래할 수 있어.”

혼자 여행을 떠나면,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같은 에펠탑, 같은 센 강, 같은 돌길 위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혼자 걷는 당신의 발걸음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 발걸음의 속도와 방향을 스스로 정해보는 경험은, 어쩌면 인생에서 몇 번 허락되지 않는 귀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파리는 그 선물을 내게 건네준 도시였고, 이제 나는 그 선물로 만든 노래들로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려 보고자 한다.

언젠가 당신이 에펠탑 아래에 서게 된다면, 꼭 한 번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혼자라는 사실을 온전히 느껴보기를 바란다. 가슴 속 어딘가가 살짝 저릿해지는 그 순간,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들릴 것이다.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혼자였기에 오히려 더 깊은 그리움으로 남았다”는, 그 오래된 문장의 진짜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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