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내 안에 음악을 심는다

여행이 내 음악이 되는 순간들

여행은 내 음악의 씨앗이다. 낯선 도시를 걷고, 다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익숙하지 않은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내 안에서 작은 선율들이 싹을 틔운다. 심지어 운전을 할 때조차도, 창밖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다 보면 문득 멜로디가 떠오르고,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곡의 조각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내게 그런 선율의 정점 같은 기억이다. 그 화려하고 고전적인 도시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더 깊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꼈다.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지만,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그래서인지 그곳의 풍경은 사진 속 장면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계속 울리는 하나의 긴 음악으로 남았다. 파리의 하늘과 카페의 소음, 골목의 냄새까지 모두가 악보의 한 줄, 한 음표가 되어 아직도 내 안에서 흐르고 있다.

나는 피카소,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클림트, 파울 클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 미술관에서 그들의 작품 앞에 서 있을 때면,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내 안으로 스며든다. 화면 속 과감한 선과 색, 뒤틀린 얼굴과 기묘한 구도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그건 감탄을 넘어, ‘나도 나만의 언어로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가까운 감정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닌다. 카페 한 구석, 기차 안, 해질 무렵의 공원 벤치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말로 다 적을 수 없는 기분, 아직 곡으로 만들지 못한 정서,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공기의 결까지도 연필 몇 줄로 남겨두려 한다. 그렇게 쌓인 수많은 흔적들이 언젠가 나의 음악과 그림이 된다.

나는 창작이란 엄마가 아이를 품고 세상에 내놓기까지의 모든 순간과 닮았다고 믿는다. 설레는 기다림이 있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밤들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그 순간,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과 해방감,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음악 한 곡, 그림 한 점 뒤에는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래서일까, 완성된 작업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일부를 세상에 떼어내 건네는 기분이 든다.

세상에 자연의 소리보다 아름다운 음악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파도 소리,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소리, 눈이 소복이 쌓일 때의 고요함,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합창. 인간이 만든 음악은 어쩌면 그런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려는, 혹은 그 순간의 감정을 다시 불러오려는 애틋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알프스와 알래스카처럼, 자연이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곳들을 사랑한다.

언젠가 꼭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겨울 하늘 아래 서서, 오로라를 눈으로, 귀로, 온몸으로 만끽해 보고 싶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흔들리는 빛의 파도를 바라보다 보면, 그 장면을 위한 멜로디가 어느새 내 안에서 저절로 태어날 것만 같다. 밤의 적막과 설원의 숨, 하늘을 가르는 빛의 결을 하나의 곡으로 담아낼 수 있다면, 그건 내게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적일 것이다.

나에게 진짜 희열은 타인의 인정에서 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칭찬이나 수상 내역, 숫자로 표현되는 성과보다 더 큰 기쁨은,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그림과 음악 속에 온전히 묻어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래, 이건 분명히 나다운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그 짧은 찰나. 그때 나는 비로소 나와 나의 작업이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여행에서 시작된 작은 씨앗들은 이렇게 내 안에서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되고, 앞으로의 나를 향한 한 걸음이 된다. 내가 사랑한 도시와 풍경, 존경하는 화가들의 세계,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북쪽의 하늘까지. 그 모든 것들이 언젠가 또 다른 선율과 색채로 태어나길, 나는 오늘도 조용히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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