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assojo의 창작 에세이
낮의 나는 분주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쏟아지는 알림과 메일, 회의와 보고서 사이를 오가다 보면, 하루는 언제나 남의 시간으로 끝나 버린다. 누군가의 일정, 누군가의 기대, 누군가의 목소리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캘린더를 바라보다 보면, 내 안에서만 조용히 웅얼거리던 멜로디들은 점점 더 작아진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모두가 잠든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집 안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고, 복도 끝까지 퍼지던 발자국 소리마저 사라질 때쯤,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화면 속 시계는 새벽을 가리키고, 창밖의 도시는 먼 배경처럼 흐릿해진다. 낮 동안 나를 조여 오던 것들이 서서히 물러나고, 고요만이 또렷해지는 순간, 마치 오래 미뤄 둔 약속을 지키러 나온 사람처럼 음악이 나를 찾아온다.
첫 음은 언제나 아주 작게 시작된다. 키보드에 올린 손가락 끝에서, 혹은 기타 줄을 스치는 손목의 미세한 떨림에서, 아직 이름조차 붙지 않은 소리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방 안의 공기는 얇은 유리막처럼 투명해지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악보의 빈 줄들이 조금씩 채워지는 것 같다. 이 시간의 나는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언어로, 가장 솔직한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헤드폰을 귀에 씌우면, 세상은 조금 더 멀어진다. 남겨진 것은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모니터, 그리고 반복 재생되는 몇 마디의 구절들. 같은 구간을 수십 번 되돌려 들으면서, 내가 오늘 하루 동안 삼켰던 말들, 웃으며 넘겼던 마음들, 미처 표현하지 못한 표정들이 한 음, 한 소절에 걸터앉는다. 낮의 나는 그것들을 지나쳤지만, 새벽의 나는 끝까지 들어 준다.
때로는 코드 하나가 맞물리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흐릿하던 감정의 윤곽이 갑자기 선명해지고, 막막했던 하루가 하나의 진행으로 정리되는 느낌. 그 순간을 위해 몇 시간이고 같은 마디를 붙잡고 있을 때가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내 안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 가며, ‘아, 이게 오늘의 소리였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그 찰나. 새벽은 나에게 그런 깨달음을 아끼지 않는다.
창밖에서는 간혹 택시 불빛이 흘러가고, 멀리서 청소차의 낮고 일정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 리듬에 맞춰 베이스 라인을 살짝 바꾸어 보기도 하고, 가사 한 줄을 다시 고쳐 쓰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그냥 지나가는 소음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새 곡의 서두가 된다. 도시의 잔향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나는 오늘의 마지막 소리를 붙잡기 위해 조금 더 늦게까지 깨어 있다.
새벽의 창작 시간은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밤은 미완성의 파일들로 끝나고, 구석에 쌓인 스케치들은 빛을 보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이 시간에 돌아온다. 낮 동안 남의 언어로 말하느라 지친 마음을, 나만의 소리로 다시 채우기 위해.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아도 좋은,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의 새벽을 함께 건너줄지도 모를 음악을 믿기 위해.
해가 떠오르기 전, 창문 너머 하늘이 서서히 밝아질 때면 비로소 저장 버튼을 누른다. 오늘 완성한 것은 짧은 멜로디 한 줄뿐일지라도, 그것은 내 하루를 온전히 나에게 돌려준 증거다. 다시 분주한 낮으로 걸어 들어가기 전에,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않은 채 눈을 감아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내일도 이 시간에, 나는 어김없이 돌아와 음악을 시작할 것이라고. 나의 진짜 하루는, 여전히 새벽에 시작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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